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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은 어떤 말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hyuckee 2024. 12. 29.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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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2가 공개된 지 3일이 지날 무렵 시청을 완료했다. 시즌1에 비해 혹평이 많다는 평을 들었고 '도대체 어떻길래...'라는 생각을 품고 정주행을 시작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느낌이 있었고, 여러 이야기를 녹여내고자 했던 욕심과 시리즈를 연결하기 위한 몇몇 의문점만이 남은 시즌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시즌1은 왜 각광을 받았을까? 등의 생각으로 연결되었고 글로 남겨보고자 한다.
    오징어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 비슷한 소재의, 흥행했던 작품들이 꽤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를 들어, 게임 방식이나 흐름이 일본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와 유사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은 단순히 게임 자체에 주목하지 않았다. 다양한 처지의 인물 하나하나 강렬한 인상이 남도록 매 회차를 구성했다. 이러한 세미 옵니버스(?)식의 구성이 시청자로 하여금 대부분의 인물에 쉽게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했고, 여러 내용을 함축적으로 풀기에 좋았던 것 같다.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다른 모습을 가지지만 유복한 가정은 그 모습이 얼추 비슷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처럼 게임의 참가자는 금전적으로 제각각 다른 이유를 가지고 참가했다. 하지만 주인공은 다른 참가자와 다른 면모를 가졌다. 처음부터 이타적인 인물이었고, 누구보다 돈이 아닌 본인과 주변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인물이었다.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본인이 유리하기 위해 위선적으로 타인을 대하지 않았고, 스스럼없이 배려하는 한국인의 '정'을 실천하는 인물이다. 시즌1에서는 다른 인물들과 다른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힘든 현실에서 우리가 쉽게 미루고 잊어버리는 도덕심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왔을 때 주인공은 그저 '승리자'일 뿐이었고, 그들은 목숨을 담보로 VIP의 재미를 위해 이용된 하나의 말이었다. 이것은 많은 내용을 시사한다. 실제로 우리는 한정된 자원을 여러 이해관계에 따라 분배받는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는 어린 나이부터 대입이라는 목표나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연스레 경쟁에 참가하게 된다. 누군가는 쉽게 해결하고, 또 누군가는 이미 경쟁에서 나와 그것을 관조하는 자리에 있을 수 있다. 경쟁에 참가한 사람들은 제한된 시간 안에 각자의 방법으로 임무를 성공하고 살아남는 것 외에 깊은 고찰을 할 여유나 능력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경쟁이 끝나도 세상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주최자가 플레이어로 참여해 주인공에게 감사하는 것처럼, 눈이 멀어 잊어버린 소중한 가치를 되찾는 것이 결국 중요한 것이다.
   시즌2에서 아쉬운 점은 주인공이 시스템에 도전한다는 것에만 포커싱하는 것이다. 자기 인생을 걸고 실제 세상도 아닌 게임판을 없애고자 한다는 점에서 아마 많은 사람들의 몰입이 깨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약자가 시스템을 부수는 클리셰는 늘 있었고, 나름대로의 내용을 담았었다. 하지만 입체적으로 전개한 시즌1과 다르게 신파적인 요소만 남는다면 혹평이 이해된다. 이미 많은 작품에서 다뤘듯, 계획에는 변수가 생길 것이고 내부에 배신자가 있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외부의 조력자를 통해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데에 성공하는 그런 뻔한 흐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것도 비평의 요소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들은 기회를 제공했고, 참가자들이 선택한 결과인 하나의 게임판인데 뭐가 문제냐라고 생각한다면 능력주의, 물질만능주의, 더 나아가 목적주의에 동의하는 것이다. 능력이 없어서 이루지 못한 것이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줬다. 본인의 능력보다 운이 더 크게 작용했고, 본인의 승리보다 함께 생존하기를 바랐다. 우승해서 돈을 벌었지만, 삶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물질적으로 자유로워졌을 뿐 행복은 사라지고 공허함만 남았다. 어쩌면 이렇게 경쟁과 비교가 만연해진 현재 사회를 고발하고 일깨우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혼자 끝까지 살아남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아무리 평등을 고수해도 따지고 보면 완전히 평등할 수 없고, 완벽해 보이는 시스템도 허점이 존재한다. 경쟁의 정점에 올라가도 그것이 행복을 절대적으로 보장해주지 않는다. 부러움을 조장하고, 소수가 되지 못한 다수는 철저히 외면당한다. 이러한 현실을 알고도 우리는 타인보다 시스템에 쉽게 의존하고 내일을 꿈꾼다. 언제 올지도, 오는 건 맞는지도 모를 내일을 위해 오늘도 처절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한다. 주어진 시스템 하에 어쩌면 나와 비슷한, 혹은 어려운 처지의 누군가와 공격과 수비자로 끝나지 않는 오징어 게임을 반복하는 것이다. 아무리 우승에 대한 보상과 기회비용에 대해 만족해도, 경쟁이 거듭될수록 빠르게 참여자는 줄고, 난이도는 올라간다. 결과적으로 언젠가 또 경쟁에 참가해야 할 수 있고 또 우승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정확한 것은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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